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프 블라터 (문단 편집) === 집권 초기 === 아벨란제의 장기집권과 각종 부패, 비리, 뒷거래의 난맥상에 질린 국제축구계는 새로운 인물을 원하고 있었고 [[유럽 축구 연맹]] 회장 렌나르트 요한손이 피파의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1998년 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아프리카 축구 연맹]] 회장인 이사 하야투와 피파 부회장 [[정몽준]] 등도 요한손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아벨란제와 블라터에겐 큰 위협이 되었다. 이미 요한손은 2002 월드컵 [[일본]] 단독 개최를 고집하는 아벨란제에 맞서 한국/일본 공동개최 성사에 힘을 보탰고, 아벨란제가 [[나이지리아]] 독재자 아바차와의 밀약을 통해 독단적으로 [[FIFA U-20 월드컵]] 개최권을 준 것을 문제삼고 나서서 표결을 거쳐 개최지를 [[말레이시아]]로 변경시키는 등 여러 차례 아벨란제에 반기를 든 바 있었다. 블라터는 이에 맞서 '''돈봉투 뿌리기'''로 대응했다. 주로 국제축구계에서는 힘이 없지만 당당히 피파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축구 약체국가들의 대표들이 표적이 되었다. CAF 회장 하야투가 요한손을 공개지지하였음에도 많은 아프리카 회원국들이 블라터에게 표를 팔았다. 뿐만 아니라 대리 투표[* 요한손을 지지하던 아이티축구협회 회장이 협회 재정 문제로 피파 총회에 참석하지 못하자 블라터 지지파인 잭 워너 CONCACAF 회장이 자신의 비서를 대신 참석시켜 블라터에게 투표하라고 시켰다. 이건 뭐...], 요한손 지지 회원국에 대한 투표방해 등 노골적인 [[부정선거]]가 이루어졌다. 결국 블라터는 111표 대 80표로 요한손을 누르고 피파 회장에 당선되었다.[* 1협회 1표라는 피파의 선거 규정은 민주적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금권선거의 소지를 제공하기도 한다. 가끔 피파 집행부를 보면 통가, 파푸아뉴기니, 케이먼제도 같은 별볼일 없는 축구실력의 국가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곤 하는데 이 경우 거의 십중팔구는 어떤 은밀한 거래의 대가라고 보면 된다.] 회장이 된 블라터는 권력 공고화에 나서는데 자신의 비선조직 운영 및 외부 이권거래를 문제삼고 나선 사무총장 미셸 젠 루피넨[* [[BEXCO]]에서 열렸던 2002 월드컵 조추첨식에서 사회자로 나서 유창한 언변으로 식을 진행했던 그 분이다.]을 숙청했다. 2002년 5월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서울에서 열린 피파 총회에서는 이사 하야투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연임에 성공했다. 2007년 선거에서는 이렇다 할 반대세력의 움직임도 없이 단독 입후보했기에 당연히 3선 성공에 성공했다. 하지만 블라터 집권 초기가 마냥 순탄하지만도 않았던 것이 [[2006 FIFA 월드컵]] 개최지 선정과정에서 블라터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사건이 있었다. 당시 [[독일]]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모로코]], [[잉글랜드]]의 유치경쟁 과정에서 모로코와 잉글랜드가 먼저 떨어져 나가고 독일과 남아공의 최종 대결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승부가 매우 팽팽해서 24표를 양 국이 딱 12표씩 갈라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최종투표에서 동률이 나올 경우 피파 규정은 회장이 개최국을 지명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블라터는 남아공을 점찍고 있었다. 그러나 당초 남아공 지지표로 간주되었던 찰스 뎀시 오세아니아축구연맹 회장이 회장 개인의사에 의해 월드컵 개최국이 정해지는 일을 막기 위해[* 블라터가 잉글랜드를 상대로 1998년 선거에서 자신을 찍어주면 잉글랜드의 월드컵 개최를 지지하기로 해 놓고 통수를 때린 데 대해 같은 영연방국으로서 분개한 이유도 있다. 뎀시는 글래스고 태생의 뉴질랜드인이기 때문.][* 사실 잉글랜드도 독일과 유로 96-2006 월드컵을 서로 밀어주기로 한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엄격히 따지면 할 말은 없다. ~~그리고 [[2018 2022 FIFA 월드컵 유치전]]에서는 정몽준에게 또 통수를 얻어맞는다.~~] 기권표를 던졌고 결국 12표 대 11표로 독일이 승리한 것. 뎀시는 사건 일주일 후 피파 및 오세아니아축구연맹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가히 작은 반란이라 부를만한 사건. 그리고 [[스위스]] [[검찰]]에 의해 공금횡령 등의 혐의로 피파 사무실이 탈탈 털리기도 했다. 2006년 공식 스폰서 [[마스타카드]]를 속이고 [[비자카드]]와 계약을 체결한 데 대해 [[마스타카드]]로부터 소송당해 패소하기도 했고, 재판 과정에서 피파가 행한 온갖 속임수와 부정들이 공개되며 피파의 국제적 위신을 추락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